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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지역사회조사

이천 지역사회조사. 사회 수행평가 10632 임종환. 이천의 유래. 이천의 유래 문헌에서 찾아보면 , 고려 이전에는 南川 ( 남천 ), 南買 ( 남매 ), 黃武 ( 황무 ) 등으로 불리어 오다가 고려 왕건이 후백제군과 일전을 벌이기 위하여 福河川 ( 복하천 ) 에 이르렀을 때 홍수 ( 洪水 ) 로 인하여 내를 건널 수 없는 상황에서 徐穆 ( 서목 ) 이라는 사람이 인도하여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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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지역사회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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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entation Transcript


  1. 이천 지역사회조사 사회 수행평가 10632 임종환

  2. 이천의 유래 • 이천의 유래 • 문헌에서 찾아보면, 고려 이전에는 南川(남천),南買(남매), 黃武 (황무) 등으로 불리어 오다가 고려 왕건이 후백제군과 일전을 벌이기 위하여 福河川(복하천)에 이르렀을 때 홍수(洪水)로 인하여 내를 건널 수 없는 상황에서 徐穆(서목)이라는 사람이 인도하여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고 한다. • 후에 왕건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가상히 여겨 『利涉大川(이섭대천)』 이라는 글귀에서 첫글자 『이(利)』와 끝글자 『천(川)』을 따와 『이천(利川)』이라는 명칭을 하사한 이래 오늘날까지 불리어 오고 있다는 것이다. (동국여지승람 누정편) • 또한 일설에는 고려 태조 왕건이 남정(南征)길에 올라 이천에 주둔하고 점을 쳐보았더니,『이섭대천(利涉大川)』점사(占辭)를 얻어 역시 『이천(利川)』이라는 명칭을 내렸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 고적편) • 어의적(語義的)으로는 『큰 내(大川)를 건너 이로웠다』는 것이다. 주역 (周易)에 의하면 『이섭대천(利涉大川)』이라는 글귀가 14번이나 나오는데 대체적 으로 『학문과 덕을 쌓고 몸을 기르면 험난한 과정이라 할 수 있는 대천(大川)을 건너 큰 공(功)을 세울 수 있었으며 온 天下가 이롭게 된다』는 것이다

  3. 이천의 연혁 년도연혁475본 시는 삼국시대초에 백제 영지였음고구려 제26대 장수왕 63년 고구려에 속하여 남천현이라 칭함551신라 제24대 진흥왕시 남천주로 군주를 두었음.(오늘에 도청소재지임)757신라 제35대 경덕왕 16년 황무현으로 개칭되었고 광주(지금 광주)의 영현으로 함936고려 태조가 후백제 남정시 이천군이라 칭하였고 동 제23대 고종 44연에영창이라 하였음1390제34대 공양왕 8년 남천군이라 승칭하였음1392이태조 원년 이천현으로 감무를 두었으며 동 3대 태종 13년 현감을 두었음1444세종 26연에 도호부로 되어 부사의 부임지가 됨1894갑오경장시 현 이천군으로 칭함1913부면과 발면으로 양면이던 것을 행정구역 분합으로 부발면으로 됨호면으로 칭하였으나 행정구역 분합당시 호법면으로 됨동편에 있는 설성산의 설자와 서편에 있는 노성산의 성자를 따서 설성면이 됨신면과 둔면을 병합하여 신둔면으로 됨1914.3대면, 월면, 초면으로 분입하여 행정을 운영하여 오던 중 행정구역 개발로대월면으로 됨 상율면과 하율면으로 면통합으로 인하여 율면이 됨백면과 사면을 병합하여 백사면으로 됨1914.4마면과 장면을 병합하여 마장면으로 됨모면과 가면이 행정구역 통합으로 모가면이 됨음죽군의 대부분이 이천군으로 병합 됨1938.10읍내면이 이천읍으로 승격됨1941.10청미면이 장호원읍으로 승격 됨1966.4.21대월면에 초지출장소 설치1989.4.1부발면이 부발읍으로 승격됨1996.3.1이천군이 이천시로 승격됨이천읍이 창전동, 중리동, 관고동으로 분동됨1996.5.1대월면 초지출장소 폐지(대월면 4개리 단월리, 장록리, 대포리, 고담리를중리동으로 편입)2003.2.5창전동에서 안흥동, 갈산동, 증포동, 송정동이 분리되어 증포동으로 분동(32개통 279개반으로 행정구역 조정) 이천의 연혁

  4. (이천시 마장면 목리) 산의 높이는 349m로 주말이면 등산객들이 자주 찾는 명산으로, 옛날 홀어머니의 병환에 특효가 있다는 석이버섯을 따기 위해 효자가 절벽에 올라 갔다가 위험에 빠져 있었다. 이때 산신령이 효자가 위험에 빠진 것을 보고 목숨을 구해 주어 돗(돼지)울음산이 되어 도드람산으로 변해졌다고 한다. 이천1경 제 1경

  5. 설봉호 제2경 (이천시 관고동 설봉공원내) 2001년 세계도자기 엑스포를 통해 설봉공원내에 새롭게 조성된 설봉호는 3만여평의 면적의 둘레가 1.05km에 달해 호수주변을 따라 산책과 달리기를 즐기는 시민과 주말이면 가족들의 휴식 공간으로 각광 받고 있다 80m의 고사분수가 만들어 내는 무지개, 호수주변에 전시된 세계 각국 유명작가들의 수준높은 조각작품들,쉼터,지압로도 시민들에게 더할 나위없이 평화로운 휴식공간 이다.

  6. 설봉산 삼형제 바위 제3경 (이천시 관고동 설봉산) 설봉산 중턱에 있는 바위로 효성이 지극한 삼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나무를 하러 간 세 아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는 세 아들을 찾으러 산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세 아들은 어머니가 없자 산으로 어머니를 찾아 나서는데 어디선가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려 달려가 보니, 깊은 낭떠러지 아래에서 어머니가 호랑이에게 쫓기고 있어 삼형제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똑같이 절벽을 뛰어 내렸는데 그순간 세 덩어리의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7. 설봉산성 제4경 • (이천시 관고동 설봉공원 내) 설봉산의 7~8부 능선, 일명 칼바위를 중심으로 약 3만여평에 달하는 지대가 바로 옛 산성터로, 설봉산성은 4세기 후반 한성 백제시대 때 축조된 보기드문 석성 으로, 그동안 세차례에 걸친 발굴조사 전 과정과 발굴된 유물이 현재 시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8. 부지방에는 이천 산수유마을이 있다. 구례보다 늦게 알려졌지중만 얕보면 곤란하다. 봄이면 노란 산수유꽃으로 뒤덮히는 경기도 이천의 도립리, 송말리, 경사리 일대는 수령 100년 내외의 산수유나무가 8,000여 그루에 이른다.이천 산수유마을의 시작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왕조 중종 시절, 조광조를 따르던 엄용순이라는 선비가 기묘사화를 피해 이곳으로 낙향했다. 그와 뜻을 같이 한 다섯 명의 선비와 함께 이곳에 육괴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주위에 느티나무와 산수유나무를 심은 것이 마을의 시초가 되었다.전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오랜 전통의 산수유 고장이다. 도립마을은 남한강에서 한발짝 물러선 산골, 서울에서 자동차로 1시간 남짓 거리다. 해마다 3월 말이면 원적산(634m) 자락을 타고 산수유꽃이 샛노랗게 물들어 간다. 수도권에 이리도 아름다운 꽃마을이 숨어 있었다니! 3만여 평의 산골 마을에 8000여 그루의 산수유가 꽃대궐을 차린다.산자락이면 산자락대로 숲길이면 숲길대로 산수유가 만발해 산수유축제(3월말 - 4월초) 가 열리는 때면 이 일대는 무릉도원 부럽지 않은 꽃마을이 된다.쌀과 도자기의 고장 이천의 최고봉인 원적산 산행은 바로 이 산수유 꽃대궐서부터 시작된다.육괴정과 느티나무를 뒤로 하고 원적산 자락으로 다가가면 돌담과 함께 줄줄이 서 있는 산수유나무 군락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야말로 노란 물결이다. 아직 앙상한 가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다른 나무들에 비해 산수유나무는 노란꽃이 풍성하다. 산수유나무는 가지 끝에 우산살처럼 꽃자루가 펼쳐지고 그 끝에 작은 꽃이 피어난다. 이천 산수유 축제 제5경

  9. 종목 : 천연기념물 제381호분류 : 자연유산 / 천연기념물/ 문화역사기념물/ 민속수량 : 1주(5,366㎡)지정일 : 1996.12.30소재지 : 경기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 201-11소유자 : 홍삼만관리자 : 이천시백사 도립리의 반룡송은 이천 백사면 면사무소에서 서쪽으로 약 1.7㎞ 떨어진 도립리 어산마을에서 자라고 있으며 하늘에 오르기 전에 땅에 서리고 있는 용이라 하여 반룡송(蟠龍松)이라 부른다.또는 일만년 이상 살아갈 용송(龍松)이라 하여 만년송(萬年松)이라고도 부른다.반룡송의 높이는 4.25m, 가슴높이의 둘레는 1.83m이다.높이 2m 정도에서 가지가 사방으로 갈라져 넓게 퍼져 있으며, 하늘을 향한 가지는 마치 용트림하듯 기묘한 모습으로 비틀리면서 180°휘어진 모습을 하고 있다.신라말 도선스님이 이곳과 함흥, 서울, 강원도, 계룡산에서 장차 큰 인물이 태어날 것을 예언하면서 심어놓은 소나무의 한 그루라고 전해지며, 이 나무의 껍질을 벗긴 사람이 병을 얻어 죽었다는 얘기도 있다.백사 도립리의 반룡송은 모양이 아주 특이하며, 생물학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이천 반룡송 제6경

  10. 애련정 제7경 • (이천시 안흥동 미란다호텔 뒷편) 이천읍지와 애련정기에 의하면 애련정은 세종10년 (1428)에 중건하였으며, 이천시민의 염원을 담아 1998년 12월 복원 하였다. 아름다운 애련정의 우아함과 주변경관이 잘 어울리며 시민들이 편안한 휴식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11. 노성산 말머리바위 제8경 • (이천시 설성면 수산리) 노성산은 해발 310m로 아기자기하고 독특한 등산코스와 입구에는 남녀노소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체육 공원이 있어 많은 시민들이 즐겨 찾는 산이다. 말의 머리 형상을 닮은 병풍바위 굴바위가 있어 그 기암을 자랑하며 맑은 날에는 산 정상에서 충북 감곡,안성,일죽,여주,양평,까지 보인다

  12. 이천도예촌 제9경 • (이천시 사음동,신둔면 수광리 일원) 이천시 사음동,신둔면 수광리 일대는 도예업체가 밀집한 도예촌으로 조선관요의 폐쇄로 맥이 끊겼던 전통 도자기의 제조기법을 전통도예 장인들의 수광리의 칠기가마를 중심으로 연구를 거듭한 끝에 한국을 대표하는 훌륭한 전통문화를 성공적으로 재현하였으며, 예술혼이 살아숨쉬는 곳이다.

  13. 국가지정 문화재

  14. 경기도지정 문화재

  15. 이천시 향토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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